롬 12:1-11 공동체정신
올 해 y13 35명이 졸업합니다.
그 중에서 3명 남고, 나머지 학생들은 전 세계로 흩어집니다.
제가 다른 지역에 가서 우리 성도님들이 다니는 교회의 식구들을 만날 때마다 대부분 과분한 칭찬과 대접을 받게 됩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우리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빛내는 성도님들이 되도록 더욱 말씀양육을 잘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됩니다.
교회는 신앙공동체입니다.
공동체란 ‘생활과 운명을 같이 하는 조직체’라는 문자적인 뜻을 가지는데, 교회는 단순한 공동체가 아니라 신앙공동체이기 때문에 조직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생명체입니다.
교회는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셨고, 오순절날 120명이 교회공동체로 출발하여, 3000명으로, 5000명으로 그리고 수를 셀 수 없는 허다한 무리로 성장했습니다. 초대교회부터 지금까지 교회는 공동체였습니다.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는 사람들이 만든 것입니다. 교파나 교단은 교회의 껍질이지 본질은 아닙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몸, 즉 신앙공동체입니다. 일반 공동체와는 다른 생명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를 조직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생명체입니다.
생명과 생명이 만나서 그리스도의 몸을 만들어 내는 신비한 곳입니다.
‘내가 높으냐 네가 높으냐?’는 서열을 따지고, ‘내가 잘났냐 네가 잘났냐?’를 따지는 경연장도 아닙니다. 교회는 생명과 생명이 만나서,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어가는 거룩한 신앙공동체, 생명공동체입니다.
세상일은 ‘나만 잘하면’ 됩니다.
그러나 교회 일은 나만 잘해서 안되고, 우리 모두가 잘 해야 하는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교회에 왔습니다.
내가 잘되고, 네가 잘되고, 우리 모두가 잘되기 위해서 교회에 왔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서로를 살리는 생명공동체, 건강하고 행복하고 그래서 아름다운 교회로 성장할 수 있을까요?
1. 신앙공동체는 몸으로 섬기는 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롬12장부터는 구원받은 사람의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구원받은 이후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첫 구절에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는 아주 정확한 공동체 정신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이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앞뒤구절 다 빼고 심플하게 말하면 ‘너희 몸을 ....드리라’입니다.
교회는 몸으로 희생하는 곳입니다.
고상하고 고고하게 홀로 기도하고 성경 보는 곳이 아니라, 기도하고 성경공부한 후에는 몸으로 예배드리고, 몸으로 봉사하고, 몸으로 헌신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몸으로 헌신하는 단계로 들어서지 못하면 교회생활의 즐거움을 느껴보지 못합니다.
참된 예배란 몸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예배의 첫 번째 조건이 나의 시간을 드리고, 목소리와 마음과 물질을 드리는 몸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마음으로만 ‘내가 하나님 믿는 거 다 아시지’ 이렇게 드리는 예배는 참된 예배가 아니라, 몸으로 직접 와서 몸으로 살아있는 제사를 드리는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찬양도 속으로 드리는 찬양이 아니라 목청을 다하여 헌신의 힘을 쏳는 찬양을 드릴 때 감격이 우러나옵니다.
예배자는 예배시간에 예배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예배부터 드리고 그 다음에 교사도 하고, 봉사도 하고, 전도 선교도 해야 합니다. 신앙의 가장 최우선은 예배자로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진정한 헌신은 예배부터 올바로 드리는 사람입니다.
신앙 좋다고 생각했는데, 예배의 자리에 없을 때 실망하게 됩니다.
모든 헌신은 예배로부터 시작됩니다. 몸으로 드리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고 말씀했는데, ‘영적’이란 말은 ‘온전하다’는 뜻입니다. 참된 예배란 깨끗하고 순결한 몸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몸은 성전에 왔으되, 세상 사람들이 다 부끄러워하는 온갖 부끄러운 일을 하다가 성전에 와서 드리는 예배는 영적인 예배가 아닙니다. 믿는 사람답게 깨끗하고 거룩하게 살다가 예배의 시간에 예배자의 자리에 왔을 때 그것이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는 영적인 예배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의 자리에 오기 전부터 땀흘려 정직하게 일한 후에 나의 시간과 몸과 마음과 헌금과 헌신을 드리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영적인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항상 주일예배를 생명처럼 드리고, 그 밖의 예배들을 내 시간과 정성을 다 바쳐 나의 몸으로 드린다는 예배자의 자세를 가지고, 예배에 성공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예배의 승리자들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2. 신앙공동체는 믿음의 분량대로, 순리대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3절) 생활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에 가보면, 허허벌판에서 천막을 치고 살아가는 베두인족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풀을 따라서 짐승을 기르는 유목민들입니다. 가축들이 근방의 풀을 다 뜯어 먹으면 단출한 천막을 거두어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면서 살아가는 단순한 생활을 반복하는 그런 유목민입니다.
그런데 이 베두인들에게 아주 특별한 특징이 하나 있는데, 대부분의 베두인들은 ‘보통 백 살 넘게 산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베두인의 장수비결을 연구해 보았습니다.
우선 그들의 식생활부터 연구해 보았습니다. 식생활에서는 결정적인 장수의 비결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연구한 결과, 베두인들의 장수 비결은 ‘스트레스 없는 삶을 살고 있다.’는 단순한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베두인 가족의 평상시 하루 일과를 살펴보면, 그들은 소중한 일조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해뜨기 직전에 일찍 일어납니다. 지평선 위로 햇빛이 희미하게만 비취기 시작할 때부터 모든 식구들이 일어나기 시작해서, 해가 뜨면 모든 식구들이 각자 맡은 일을 시작합니다.
양을 치는 사람, 옷을 만들거나 식사를 준비하는 사람, 실과 바늘로 찢어진 천막을 깁는 사람, 시내로 나가서 양털을 음식이나 가제도구 등 생활에 필요한 것을 구입하는 사람 등등 모두 각자 맡은 일을 감당합니다.
그리고는 해가 지면 모든 일을 다 중단합니다.
저녁이 되면 전기가 없고, 텔레비전도 없고, 전화도 없고, 메일 체크할 컴퓨터도 없습니다. 저녁이 되면 온 가족이 모여서 함께 식사를 하고, 불을 지펴놓고, 몇 시간 떠들다가 혹은 노래를 부르고 춤추다가 노동에 지친 베두인들은 아주 깊은 단잠을 잡니다. 매일 그렇게 단순한 생활을 반복하는 것이 베두인들의 일상생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평범한 베두인들이 장수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그들은 창조의 리듬에 맞추어 물 흐르듯이 순리대로 살아가고 있고, 어릴 때부터 공동체 생활에 익숙해 져서, 서로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얻을 것은 얻어내는 순리대로 인간관계를 풀어가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몸과 마음이 피조물들과 같은 리듬으로 스트레스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베두인은 자연과 순리대로 살고, 사람들과 순리대로 살아가는 스트레스 없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창조의 질서대로 순리대로 살고, 태어날 때부터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여 사람들과 순리대로 살아가는 스트레스 없는 삶이 그들의 장수비결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순리대로 스트레스 없는 생활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교회가 스트레스 없는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 일에 대한 스트레스, 결과에 대한 스트레스에 매이지 않는 스트레스 없는 우리교회, 그리하여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고 아름다운 우리교회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스트레스 없는 우리교회를 만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롬 12:2-3, 개역)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3].....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습니다.
그 믿음의 분량대로 살아야 스트레스를 받지 않습니다.
믿음의 분량대로라는 말을 보면, 믿음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각자의 역할과 은사에도 차이가 있듯이 믿음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강한 믿음이 있는가 하면 약한 믿음이 있습니다.
강한 사람은 강한 믿음으로, 약한 사람은 약한 믿음대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토양을 만들어야 행복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강한 사람은 약한 사람을, 약한 사람은 강한 사람을 서로 이해하고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각자의 역할이 다르고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믿음이 적은 사람을 보고 비난해서도 안되고, 믿음이 적은 사람은 믿음이 많은 바람을 비난해서도 안됩니다.
독수리같이 날아가는 사람이 있고, 오리처럼 날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옳고 잘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성장합니다.
적은 믿음을 가진 사람이 성장할 때까지 인내하고 바라봐 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 순리입니다.
안되는 사람에게 억지로 큰 것을 강요해서는 무너집니다.
확실히 ‘믿음은 사랑과 격려와 칭찬의 양분을 주면 쭉쭉 성장하지만, 비판하고 정죄하면 그나마 조금 있던 믿음도 줄어버립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믿음이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끈질긴 인내가 필요합니다.
비판하고 욕하고 정죄하는 대신에 사랑으로 감싸주고 앉아주는 일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정한 교회는 지체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회입니다.
획일성을 요구하는 교회는 위험합니다.
각자가 개성이 있어야 하고, 창의성이 있어야 하고, 그러면서도 서로를 용납하고 받아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교회 안에는 큰 사람이 있고 작은 사람이 있으며, 가난한 사람이 있고 부자가 있으며, 공부 잘하는 사람도 있고 못하는 사람도 있고, 어린이도 있고 어른도 있고, 병든 사람도 있고 건강한 사람도 있고,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정신적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도 있고 별의 별 사람들이 다 합해서 교회를 이루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릅니다.
교회처럼 천차만별의 사람들이 모인 곳도 없습니다.
사람도 다르고, 방법도 다르고, 특징도 다릅니다. 그런데 다른 것은 나쁜 것이 아니라 나의 부족한 것을 채워줄 수 있는 축복입니다.
아무리 작아도 하나로 뭉치면 힘이 넘쳐흐릅니다.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분량대로 자기의 역할과 자리를 잘 지키고, 서로를 격려하고 인정하고 일으켜 주어, 기적을 일으키는 기적의 공동체로 성장해 나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손으로 대접하는 즐거움을 터득해야 합니다.
신앙의 핵심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하나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으면 아무리 달라도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중심에는 십자가의 사랑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랑에 빠지면,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 기적의 공동체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랑하고 싶지만, 방법이 서툴러서, 아직 준비가 안되서,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해서, 상대방에 대한 미움이 가시질 않아서 등등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사랑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교회를 십자가의 사랑이 넘쳐흐르는 에덴동산으로 만들 수 있을까요? (롬 12:10, 개역)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는 것’은 형제나 자매의 헌신이나 은사를 의심하지 않고 먼저 인정하며, 그의 은사와 재능을 비판하지 않고 먼저 칭찬해 주라는 의미입니다.
열심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고, 아끼고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는 그런 분위기를 생명처럼 만들어 가야 합니다.
그리고 (롬 12:13, 개역)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자기 소유로 궁핍한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는 수고를 아끼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해주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아까운 소유를 필요한 이웃을 위해서 채워주는 아름다운 헌신이 우리 안에서 끈임없이 일어나야 합니다. 그런 일들이 은밀하게 강물처럼 흘러가야 합니다. 교회적으로도 이 일이 부족하지 않도록, 더 연구하고 방법을 찾아서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는 구제의 손길이 흘러넘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공동체의 구제정신에 대한 결정적인 말씀을 13절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1세기에는 여관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지방에서 오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손님 대접이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현재 우리는 지진이 일어나고 우리도 생존하기 힘든데, 이곳을 사모하면서 이곳에 와서 공연을 하고, 전도하고, 섬기기를 원하는 사역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힘들고 어렵고 피하고 싶은 일이지만, 오시겠다는 손님들을 잘 대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의 특징입니다.
저는 최근에 손님 대접의 귀중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지난 번 지진이 발생했을 때 몇 명의 청년들과 함께 공동생활하는 것을 시작으로, 호주의 최영진목사님 가족을 섬기고, 최근에 김종윤목사님을 섬기면서 손님 대접의 즐거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 손으로 수고하는 섬김을 통해서 사람들의 살아있는 숨결을 느끼는 사랑의 나눔이 이루어지면서 형님이 되고 동생이 되고 가족으로 가까워 졌습니다. 역시 한 솥밥을 먹는 체험이 사람을 가깝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기회 더 주어진다면, 더 공개하고 더 나누고 싶습니다. 여러분 이 원하신다면 언제든지 숙식을 제공하는 사귐의 기회를 만들겠습니다. 섬김에는 섬김의 축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나의 잠자리와 음식과 손으로 하는 수고를 나누는 나눔을 통해서 신앙의 불꽃이 아름답게 피어납니다.
여자 분들이 모성애가 강한 이유는 남자들 보다 손으로 수고하고 손대접하는 것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번에 아내의 병간호를 하면서 한 달 째 아이들과 함께 손에 물을 묻히면서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면서 보니까, 손으로 하는 수고를 통해서 더욱 친밀한 인간관계가 형성되는 모성애의 비결을 터득했습니다.
15절에서는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말씀했습니다. 사랑이란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고 자신을 형제 자매와 동일시하여 그들의 삶 속에 깊이 들어가서 함께 웃고 우는 것입니다. 무정하게 초연한 것은 기독교 정신이 아닙니다.
일체의 편파심을 버리고, 할 수 있는 한 모든 사람들과 평화는 나누는 인간관계의 승리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내가 화려한 자기 고립에서 벗어나서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몸으로 드리는 예배, 나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량대로 순리대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마음 그리고 내 손으로 직접 수고하는 손님대접을 통해서 아름다운 공동체, 기적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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